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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 파리 / 유럽 / 프랑스사회 / 프랑스역사 / 테러 / 알제리 / 투명쓰레기통




"아니 이 예쁜 거리에, 쓰레기통이 저게 뭐람?"



파리, 혹은 프랑스 다른 지역을 여행하시면서 이런 생각이 드셨던 분이 있는가? 



나는 아직도, 예전 배낭여행차 처음 파리에 내렸을 때, 이 '투명 쓰레기통'이 참으로 거슬렸던 기억이 있다. 어딜가나 고풍스럽고 역사가 묻어나는 아름다운 파리 거리에서, 아무렇게나 찍어도 그림이 될 사진에 미관적으로 방해가 되는 것이 저 '투명 쓰레기통' 이었기 때문이다. 내 추억을 담아갈 사진 뿐 아니라 누가 무엇을 버렸는지 다 보이는 이 투명 쓰레기통을 도대체 왜 쓰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프랑스에서 살게 되면서 정말 우연히도 이 '투명 쓰레기통'이 담고 있는 피의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살아온 세월만큼 잡다한 지식이 충만하셨던 노교수님의 회상을 통해서였다. 


"아 그래, 그 때 RER B 선에서 폭탄이 터져서 난리가 났었다니까... 아직도 기억나. 어떤 사람은 좌석 밑에 놓여져 있던 폭탄을 발견해 밖으로 던져서 레지옹 도너 (프랑스 최고 훈장)도 받고 그랬어.. 쓰레기통에서도 폭탄이 터지고 그랬다니까. 그 이후로 쓰레기통이 싹 바뀌었잖아..." 



네? 쓰레기통에서 폭탄이 터졌다고요? 


나는 기대치 않은 곳에서 늘 내 머리속 한구석을 간지럽히던 궁금증을 해결할 실마리를 얻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많은 분들이 서양 국가의 테러의 시작을 미국의 9.11테러로서 기억하시곤 한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한국에 가지고 있는 위치나 파워 뿐 아니라, 워낙 희생자 규모, 테러의 방법이나 타겟 면에서 임팩트가 컸고, 그 이후에 지금까지도 세계 정세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최근 몇년 사이에 프랑스에서도 대규모 테러가 있어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시지만, 사실 프랑스에서 테러의 역사는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중 이 '쓰레기통'과 연관된 테러는 1994년으로 되돌아 가야한다. 프랑스는 아시다시피 제국주의를 이끌었던 국가 중 하나로서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 중 많은 식민지들이 독립을 하거나 프랑스 자치령으로 남았는데, '알제리'는 프랑스의 식민지 역사에서 아직도 많은 논쟁이 얽혀있는 국가이다. 그 이유는, '알제리'는 프랑스가 동화정책을 기본으로 펼쳤던 식민국으로서, 프랑스 본토에서 넘어간 많은 프랑스인들이 길게는 3-4세대에 걸쳐서 살고 있었고, 그 중에는 알제리 로컬 사람들과 믹스되어 살아가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1960년대 초, 알제리와 프랑스가 '독립'문제로 전쟁까지 벌인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가장 컸다. 3-4세대에 걸쳐 알제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하는 문제나, 알제리 본토사람과 믹스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 등등이 걸쳐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 갑작스레 하루아침에 알제리 등지를 떠나게 된 사람들을 일컬어 'Pieds-noirs 피에 누아'라고 한다. 프랑스 노벨문학상 수상자 중 한명인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도 3세대에 걸쳐 알제리에 살았던, 바로 이 피에 누아에 속하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파리의 투명 쓰레기통

(사진출처 W&A)


아무튼, 알제리와 프랑스는 복잡다단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알제리 정부가 이슬람근본주의 그룹과 90년대 초부터 내전 비슷한 양상을 보이며 프랑스 본토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오랜세월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정부와 프랑스는 여전히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90년대 중반 프랑스 정부가 반 이슬람그룹의 입장을 표명하면서 이슬람무장그룹이 '지하드'라는 이름아래 프랑스 본토를 타겟으로 만든 것이었다. 



1994년부터 1995년까지 프랑스에서 약 10여건의 크고 작은 테러가 일어났는데, 그 중 이 '쓰레기통'을 이용한 테러도 두 건이나 있었다. 1994년 8월에 샤를드골광장에서 쓰레기통에 넣어둔 폭탄이 터지면서 16명의 사상자가 있었고, 10월에도 파리의 한 지하철역 근처에서 쓰레기통에 숨겨 둔 폭탄이 터져 1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것이었다.



이런 일련의 테러공격으로 프랑스 정부는 Vigipirate (일종의 반테러 보안정책) 정책을 가다듬었고, 이 중에 공공장소의 '쓰레기통' 또한 모든 내용물을 식별할 수 있게 투명하게 만드는 것과 동시에 재질 또한 단단하게 만들게 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2000년대 초반부터 공공장소에서의 쓰레기통이 투명으로 바뀌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대부분의 공공장소에 이 '투명쓰레기통'이 자리하게 되었다. 물론 디자인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이런 소소한 '차이'에 숨어있는 다른 역사, 사회 등을 발견하는 재미가 외국 생활을 하며 느끼는 흥미로운 점이 아닐까.



(참고자료: Wikipedia 1 / Wikipedia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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